그날의 전화를 잊을 수 없다
2020년 10월 15일 오후 4시 30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울린 핸드폰. 발신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기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받을 때는 손이 떨렸죠.
"Hello, this is Principal XXXX. Congratulations, your son is announced as a school captain 2021"
그 순간 터져 나온 나의 짧은 환호성이 조용한 사무실을 깨뜨렸습니다. 우리 철수 (가명) 가 Junior High school (7학년-9학년:중학교)에 이어 Senior High school(10학년-12학년:고등학교)도 스쿨 캡틴이 되는 영광을 차지한 순간이었어요. 까마득히 오래 전, 제가 초등학교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벅찬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민 1세대 부모로서 느끼는 이 특별한 성취감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네요!
중학교 스쿨 캡틴 도전 - 첫 번째 리더십의 씨앗
3년 전 철수 (가명) 가 처음 중학교 스쿨 캡틴에 도전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미국 학생들의 캡틴 스피치 영상을 여러 개 보며 연구했죠.
"어떻게 해야 아이들 머리에 박힐까?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은 스피치 후 큰 스케치북 크기의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한 장씩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만든 성공
흥미롭게도 우연한 해프닝이 오히려 성공의 열쇠가 되었어요. 철수가 한 장을 거꾸로 들어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이로 인해 스피치가 더욱 각인되었죠.
메인 스피치는 어린 나이를 고려해 버스 기사에 비유했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라는 버스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드라이버가 되겠습니다."
선생님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내용을 어필한 결과, 첫 번째 리더십 경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스쿨 캡틴 도전 - 꿈을 향한 더 큰 도약
파일럿의 꿈을 담은 스피치
3년 후 고등학교 전체 회장에 도전할 때, 철수는 자신의 꿈인 비행기 파일럿을 스피치에 녹여냈습니다.
"Welcome on board. You are with us St OOO College heading to 2021 airplane. I'm today's pilot 철수. You will experience turbulence sometime..."
마치 학교라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에 완전 빙의가 되어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때론 비행기가 순항을 할 때도 때론 많이 흔들릴때도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모두를 무사히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내용으로 말이죠! 집에서 많이 연습한 덕이였을까요? 아주 유쾌하게 스피치를 잘 마쳤다고 합니다.
성장을 인정받은 특별한 순간
스피치가 끝난 후 한 친구가 다가와 말했대요. "버스 운전사에서 비행기 조종사로 업그레이드 되었네?" 두 스피치를 모두 기억해 주는 친구의 말에 철수는 감격해했고 본인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 특별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었어요. 철수를 따로 불러 당선을 알려주며, 학생 투표에서 1등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시작부터 회장감임을 직감했다고 하셨거든요.
실제 리더십 발휘 - 진짜 변화를 만드는 아이들
Meet and Greet 프로그램 런칭
회장이 된 후 철수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Meet and Greet' 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저학년 부모들이 교실에 들어갈 수 없게 되면서, 몸보다 큰 책가방과 도시락통을 힘겹게 들고 가는 아이들을 고학년 학생들이 돕는 프로그램이었죠. 참고로 호주의 대부분의 카톨릭 학교는 Prep에서 12학년까지 모두 한 학교에 다닌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는 커뮤니티 서비스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그대로 학교 커뮤니티나 지역을 위해 자원봉사를 해야하는 시간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의자를 치우는 것도, 학교 축제에 행사를 지원하는 것으로도 시간을 채워야만하는데요. 이 커뮤니티 서비스 시간을 채우지 못한12학년 학생들까지 포함해 스케줄을 만들어 아침 7시 30분부터 8시 10분까지 저학년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모습에 매우 기뻐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구요.
시의원과의 만남 - 진짜 변화를 위한 행동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실내 농구장 건설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런 큰 프로젝트는 학교자체적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에서 펀딩을 도와주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름방학 중에도 철수는 학교 대표 4명과 함께 지역 시의원 (Local MP)을 만나러 갔습니다. 철수가 직접 시의원에게 이메일을 써서 성사된 미팅이었죠. 제안서 작성부터 팀원들과의 사전 미팅까지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3개월 후 다음 미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어찌보면 무모하게 보였을 그의 행동에 교장선생님 이하 선생님들도 모두 지지를 해주었고 또 시의원과 관련 분야에 계신 분들이 고등학생이 제안한 미팅을 받아준 것을 보았을 때, 어른들의 태도와 배려, 격려와 지원이 아이들이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떠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안전한 발판이 아니였나 많이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딸, 순이 (가명) 의 언어 홍보대사 (Language Ambassador) 활동
철수만큼 순이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죠. 2년 연속 언어 홍보대사로 선발되어 제2외국어 학습을 장려하고, 교환학생들과 국제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언어적으로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언어 (Bi-lingual)를 사용하는 것이 호주에서는 얼마나 혜택이고 장점인지 생활속에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호주 교육 시스템이 주는 특별한 선물
한국과 다른 리더십 교육 문화
호주의 학교 리더십 문화를 경험하면서 한국과의 차이를 많이 느꼈습니다. 여기서는 부모가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부모를 부르지도 않을 뿐더러, 누가 회장 부모인지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아이들이 주도하는 시스템입니다.
1986년 제가 초등학교 회장을 했을 때, 아버지가 학교에 피아노 3대를 기부해야 했던 것과는 정말 다른 환경이더라구요. 여기서는 순수하게 아이들의 능력과 비전으로만 평가받습니다. 아들이 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학교에 간 적도 한 번도 없었구요. 오히려, 나 회장 엄마인데…라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사할 기회 한번제가 오히려 서운해 했답니다. ^^
이민 가정 자녀들에게 주는 의미
철수가 다니는 학교는 대부분이 백인 위주인 카톨릭 학교였습니다. 아시안 학생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그것도 중등과 고등이 함께 있는 학교에서 한 학생이 중등 회장과 고등학교 회장을 연이어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시안 최초 회장, 중고등학교 연이어 두번 당선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를 발판으로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안 리더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수 민족으로서 느꼈을 부담과 책임감을 이겨내고 이룬 성취가 후배들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최초'라는 타이틀보다는 앞으로는 이것이 당연시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철수와 순이는 학교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재미있다고 말이죠. 행복하다고 말이죠. 농장과 같이 드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 놀고,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참여형 교육, 자율과 책임을 함께 배우는 공간, 개인주의지만 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남의 권리도 존중해야 하는 사회문화적인 가치,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과 커뮤니티 서비스 마인드를 키워온 우리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호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이민 1세대로서의 모든 노력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글을 쓰며 눈물이 찔금~ 그간의 노력이 떠올라서였을 겁니다. 아이를 당당하게 키우려 했던 노력,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멘탈을 강하게 키우려 했던 노력, 양쪽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던 모든 기억들이 주마간산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이민 1세대라면 모두 알 것입니다. 2세대들의 굳건한 정착과 그들의 행복 속에서 1세대가 쏟은 것들을요. 희생이라기보다는 '노력'이라고 하고 싶어요. 그 노력이 아이들에게 닿아 그들의 삶이 아름다운 결실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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